유전체 연구동향

[우주생물학을 만나다] 원시 지구에서 새롭게 등장한 RNA

유전체의학연구소l 2024-02-15l 조회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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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생물 I 혹은 공통과학에서 밀러의 실험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창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무렵에 “밀러의 실험”은 제게 너무나도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밀러의 실험”은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던 원시 지구의 환경을 실험실에서 재현한 뒤, 해당 환경에서 무기 화합물이 유기 화합물로 합성되는 것을 확인한 실험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원시 지구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요소들인 아미노산이 무려 13가지나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것은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퍼즐을 푸는데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아미노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아미노산들이 단백질로 합성이 되어야 하고, 복제 가능한 RNA 혹은 DNA 같은 유전물질들이 존재해야 하는 등 여러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아미노산이 아닌 RNA가 43억 년 전, 화산 활동이 왕성하던 원시 지구에 흔히 존재했던 현무암 주변에서 자연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이 연구결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드디어 진화의 마지막 수수께끼가 풀렸다.”라는 등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찬사가 이어졌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결과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우리도 찬사를 보내고 싶은데...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야 찬사를 보내든 말든 할 텐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생물학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분들에게도 RNA는 한 번쯤 들어본 친숙한 과학 용어가 되었습니다. RNA(RiboNucleic Acid)는 이중 가닥으로 이루어진 DNA(DeoxyriboNucleis Acid)와는 달리 단일 가닥으로 이루어진 유전물질로써, A(아데닌), U(우라실), G(구아닌), 그리고 C(시토신) 이렇게 4개의 염기를 이용해서 유전자를 암호화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RNA 바이러스로써, 단일 가닥인 RNA의 불안전한 특성으로 인해 변이가 쉽게 일어나 수많은 변종이 발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친숙한? RNA는 여러 가지 정황상 지구상에 등장한 최초의 유전 물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가설이 있고,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설을 “RNA 세계 (RNA World)”라고 합니다. 세포 내에서 물질대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촉매 역할을 하는 효소(일꾼)와 기질(재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효소는 단백질이지만, 일부 효소들은 RNA가 효소로써 작용을 하고, 이러한 효소 역할을 하는 RNA를 리보자임이라고 합니다. 또한, RNA는 역전사효소에 의해 단일 가닥이 RNA가 이중가닥의 DNA로 합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RNA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다양한 역할들을 할 수 있어, 최초의 유전 물질로써 지구 생명체 진화의 시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RNA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이것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 준 것이 바로 이번 연재를 통해 소개해드리는 논문입니다. 43억 년 전 지구는 화산활동이 왕성한 어떠한 생명체도 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화산활동으로 인해 현무암이 녹았다가 굳으면서 생기는 현무암 유리 속에서 당시 지구 및 대기에 존재했던 물질들만으로 RNA가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진은 “밀러의 실험”처럼 최신의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원시 지구 대기와 현무암 유리 환경을 재현했고, 이곳에서 가장 짧은 것은 90개부터 최대 300개의 뉴클레오타이드로 이루어진 RNA가 자연 합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당시의 지구는 어떠한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합성된 RNA는 박테리아 같은 분해자에 의해 분해되지 않고 남아있었을 겁니다. 단일 가닥의 불안정한 RNA는 지속적으로 변이가 일어나게 되고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러 스스로 복제가 가능한 형태로 바뀌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지금의 유전물질로 진화하게 되었고, 여러 연구들에 의해 검증된 다양한 아미노산 및 유기물의 생성 및 유입으로 인해 최초의 원시 생명체가 탄생했을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점점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물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구 생명의 기원은 오직 한 가지 요인으로 인해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직 RNA가 자연적으로 합성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최근 밝혀지는 여러 연구 결과들을 보면, 지구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가능성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만간 연재에서 관련 내용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웹이 보내주는 데이터를 보면, 이러한 가능성은 꼭 지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범우주적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당장은 갈 수 없지만, 어느 행성 한 곳에서라도 확실한 생명체의 징후가 관찰된다면, 더 이상 우주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닌 게 확실시되고, 그에 따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후보 행성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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